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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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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요 찬드라*

주머니 속 밥값이 오간데 없이 사라진
네팔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찬드라
서둘러 채운 허기가 그녀의 멱살을 움켜잡아
경찰서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경찰 앞에 선 찬드라의 허름한 행색의 모국어는
그녀를 1급 행려병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감금 시킨다

알 수 없는 알약들을 강제로 삼키며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나는 네팔 사람이예요”
목이 쉰 외침은 귀 막은 사람들의 발길에
이리 저리 채이다가
차가운 마룻바닥에 시끄러운 소음으로 나뒹군다
한기 저녁 값으로 6년 4개월을
한입에 냉큼 털어넣는 그녀의 모국어

한국이 얼마나 원망스러우냐
얼마나 미우냐는 물음에
찬드라는 유리창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는다
맑은 하늘이 가득 들어찬 유리창에
얼굴을 비춰 보는 찬드라

죽은 줄 알았던 딸 찾아 온 아버지 품에 안겨
“경찰은 미워, 다른 사람들은 아니.”
이른 봄 매화꽃 향기로 웃는
그녀의 미소 뒤에서
삼십여년전 독일에 돈 벌러 갔다는 삼촌의 목소리가
메아리로 들려왔다

 

제비집

고향집 처마 밑에 제비집 한 채 있었다. 삼십 촉 전구를 뒷간으로 쓰던 녀석들. 작대기를 내려치는 순간, 문밖으로 튀어나온 할머니의 고함소리가 내 머리채를 낚궈챘다. 그 후 산으로 거쳐를 옮긴 할머니의 품에서 나온 편지엔, 독일에 광부로 간 젊은 작은아버지가 불구의 몸으로 안겨 있었다. 고향 떠날 때 남긴 머리카락 한줌과, 빛바랜 주민등록증도 나란히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까치발 딛고 선 할머니가 제비를 기다린 것은, 활처럼 휜 등을 펼쳐, 제비집에 무명솜과 지푸라기 넣어주었던 것은. 이십오년동안 소식 한 장 없는 아들. 빛바랜 주민등록증 하나로 기다리다 먼 길 떠나던 그날. 그리운 아들 모습 눈부처로 새겨가느라 차마 감지 못하고 가신 길

제비집은 할머니와 작은아버지가 일 년에 한번 만나던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면회소였다

 

포이동 266번지

오십여가구가 한 번지에 감자알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포이동 266번지. 얼굴에 핀 버즘처럼 햇볕에 하얗게 바래간다. 구청 직원이 다녀 간 뒤, 타워펠리스와 양재천 사이에 낀 초등학교 출석부에서 몇명의 학생들이 또 빠져나갔다. 판자촌 아이들 찢겨진 국정교과서처럼, 중국집으로 단란주점으로 흩어졌다. 대광주리에 집게 하나 달랑 들려 강제 이주 된 후, 살갗 드러낸 전선이 천정에 거미줄 친 방에서, 전봇대위의 까치처럼 살아온 사람들. 형과 누나가 떠난 자리. 빈방에 코흘리개 어린것들만 남아 연신 촛점잃은 눈빛을 굴려댄다.

의심없이 퍼마신 희망으로 말미가 짧아지는 포이동 266번지 수퍼 앞 평상, 아침부터 취기가 오른다. 손가락을 넣어 꾸역꾸역 토해내도 다 뱉어낼 수 없는 시간들. 이십사년을 담보로 불어난 원금 없는 가난이 죽음으로 상환되는 곳. 망가진채로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리어카 바퀴살만이, 넝마로 살아온 삶을 외롭게 증언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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