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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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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연가

마음을 모조리
너에게 쏟아버린 후부터였어
구멍 뚫린 몸으로
구르고 또 굴렀던 것은.
날숨과 들숨 몰아쉬며
시궁창 같은 삶을 질기게 견디는 것은
바닥을 사는 자의 몸부림 같은 것.
맞고 구르면서
세상 끝까지 가보는 거야
질기디 질긴 껍질만 남은 뱃가죽에도
이젠 이력이 붙어
웬만한 모멸과 수모쯤 넉넉히 감당할 수 있어
찌그러진 모습으로 진창을 구를지언정
내 몸에서 흐르는 녹으로 나를
파먹긴 싫었던 거야 그래서 오늘도
멈추지 않고 신나게 구르고 있지
때론 바람으로 배를 딴딴하게 부풀려
온몸으로 휘파람을 불면서 말이야

 

보령석탄박물관

이마에 매단 작은 불빛 하나로 가난의 막장에서 찾아낸 비상구 향해 돌진한 시간들. 탄차로 밀고 들어간 레일 위 지하 갱도는 삶과 죽음의 교차로였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빨간 신호등 아래서 찬밥 한 덩이 나눠 먹던 동료가, 탄 더미에 깔려 죽어갈 때도 명아주 줄기보다 더 질기게 버텨온 김씨. 먼저 간 동료들의 무덤하나 제 속에 간식하고자 했음인가. 흔적도 없이 갱 속에 묻힌 동료들의 증언처럼 그의 폐 속 깊이 자리 잡은 작은 갱도

폐광이후 사택을 떠났던 김씨는
탄광의 역사를 증언하는 안내원이 되어
돌아왔다
증언과 기억을 비집는 사이
그의 폐 속 깊이 묻힌 미발굴갱도의 탄진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깨를 들썩이며 쿨럭 거릴 때마다
동료들의 신음소리가 목에 걸린 밥풀처럼
토막토막 튀어 나온다
호기심으로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틈에
전시품처럼 선 그의 얼굴에서 뿜어내는 탄가루가
우리들의 목구멍 속으로 스며든다
그렇게 그는 저 깊고 어둔 근대사속으로
자꾸만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오늘도 무사히에서 보령석탄박물관으로
이름표를 바꿔 단 갱 입구
막장으로 질주해 가던 시간이
레일 위
텅 빈 탄차 위에 가득 실린 채
김씨를 태우고 갈 발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덩굴손

늦 가을. 엄마와 함께 고구마 덩굴을 걷는다
한줄기 뽑아 올릴때 마다 올망졸망 따라 올라오는 얼굴
아버지 삶의 내력들이 밭두렁을 타고 올라 앉는다

안주머니에 도장을 가득 넣어 다니시던 아버지 면사무소로 등기소로 농협으로, 김씨 박씨 이씨로 줄기를 뻗어나갔다 엄마가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 헤맬 때 마다, 남의 빚보증 서류에서, 회관 스피커 속에서 쑥 뽑혀 나왔다 나이 든 아버지는 무의탁 노인들의 주검을 거둬, 김 노인 최 노인의 아들로 살다가, 양로원 빚보증에도 끼어들어 더 넓게 덩굴을 뻗어나갔다

늦 가을밤 내린 서리는 대문에서 한양조씨 13대 종손의 덩굴을 걷어냈다. 그날 이후 내가 간혹 아버지! 하고 부르면 마을 사람들 얼굴을 가훈처럼 매단 아버지가 밭고랑에서 쑥 뽑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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